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는 없었습니다. 그럼 누구의 잘못일까요?
2025년 현재, 우리는 이미 자율주행차의 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일부 고급 차량은 차선을 유지하며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고, 세종시에서는 무인 자율주행 셔틀이 시민들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개념이 '운전자가 있는 탈것'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지능형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물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물음은 다름 아닌 '책임'입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차량이 사고를 냈을 때, 그 결과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보험은 누가 가입해야 하며, 법정에서는 누가 피고가 되어야 할까요? 지금까지의 사고 책임은 대부분 운전자의 몫이었지만, 자율주행차는 이 전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자율주행차 시대에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윤리적 책임'과 '법제화'의 문제를 기술 발전, 실제 사례, 그리고 제도적 대응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자율주행 윤리 책임이라는 화두는 단순한 미래 담론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일상과 직접 연결된 실질적인 고민입니다.
인간 대신 AI가 판단할 때, 윤리는 누구의 것인가?
자율주행차는 인간 운전자를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결합합니다. 라이다(LiDAR), 카메라, 레이더, GPS, 고정밀 지도 등이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인공지능이 그 데이터를 분석해 주행 판단을 내립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시스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윤리적 판단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입니다. 앞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고, 이를 피하면 도로를 벗어나 다른 차량과 충돌할 상황이라면,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보호할 것인지, 다수의 생명을 택할 것인지, 혹은 탑승자의 안전을 우선할 것인지—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나라나 문화에 따라 판단 기준도 다릅니다.
MIT의 'Moral Machine' 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 참가자들은 어린 생명을 보호하는 선택을 더 중시했고, 중국 참가자들은 노인을 존중하는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자율주행차는 어떤 윤리 기준을 따라야 할까요? 자율주행 윤리는 단순히 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가치 기준의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설계한 개발자, 이를 상용화한 제조사, 사용한 소비자, 데이터 제공자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도덕적 책임까지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율주행차 사고 사례와 불완전한 법적 대응
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발생한 우버(Uber)의 자율주행차 보행자 사망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자율주행 시스템이 보행자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으며, 당시 차량에 동승한 안전요원 역시 도로를 제대로 주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버는 미국 내 자율주행 테스트를 일시 중단했고, 자율주행차 산업 전반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법적 책임은 분산된 채 뚜렷한 책임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은 오랜 시간 법적 공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 2021년 세종시에서는 시범 운행 중이던 자율주행 셔틀이 정지선을 인식하지 못하고 교차로에 진입해 사고 위험을 초래한 바 있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해당 셔틀에는 탑승자 외에 어떠한 운전자나 안전요원도 없었습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자율주행차의 안전 기준과 법적 감독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급증했습니다.
또한, 테슬라 오토파일럿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사용자는 시스템을 과신해 운전대를 잡지 않은 채 차량을 주행시키다가, 충돌 사고를 유발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습니다. 테슬라 측은 '운전자 보조 기능'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 환경에서는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법적 공백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하나같이 '책임의 모호성'이라는 공통된 문제를 드러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자율주행 레벨 3 이상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기준이 부족하며, 사고 발생 시 운전자,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사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법과 제도의 미래
기술은 이미 현실을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시대를 위한 법적 프레임워크는 지금이라도 빠르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단지 사고 책임을 따지는 수준이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의 법제화가 핵심입니다.
미국은 주(state) 단위로 자율주행 법안을 개별적으로 제정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는 로보택시 운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AI 위험도에 따라 규제를 다르게 적용하는 'AI 법안'을 마련해 자율주행차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독일은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우선 책임을 지도록 법적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자율주행자동차법’을 통해 자율주행차 운행이 가능한 시범지구를 지정하고 있으며, 보험 체계 개편, 사고 발생 시 행정 처리 기준 마련 등 여러 제도를 정비 중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적인 문제는 '운전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책임 규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는 보험 제도도 변해야 합니다. 기존처럼 운전자의 사고 이력 기반 보험료 산정은 의미가 약해지며, 차량의 AI 버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여부, 제조사별 알고리즘 안전도 등이 보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 전용 보험'도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자율주행 윤리 교육, 기술 인식 개선 캠페인도 중요합니다. 기술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과 사회의 신뢰 위에서 작동합니다. 기술적 완성도만으로는 절대 자율주행차가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법과 윤리, 그리고 시민의 이해가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자율주행은 ‘일상이 된 미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윤리 책임, 결국 우리 모두의 몫
자율주행차는 그 자체로 혁신이자 도전입니다. 기술은 운전대를 놓게 만들었지만, 책임의 무게는 여전히 우리 어깨 위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운전이 필요 없는 자동차'가 아닌, '책임을 함께 나누는 사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합니다.
사고가 나면 누구 잘못인가요? 운전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임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AI가 선택한 판단을 끝까지 신뢰하시겠습니까?